기차이야기

살구꽃 핀 마을, 상동역 이야기

경전선 2015. 4. 9. 16:40

경부선 철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 사에에 상동역이란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얽힌 사연을 제가 한번적어 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우리 직장 홈피에 올린 적이 있는데, 한글 작품 감상과 함께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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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근접 촬영한 습작 사진) 

  

(다음은 저의 직장 홈피에 썼던 안내 글) 

팔불출이라 할까봐 조심스럽군요.

다름이 아니오라...

제 아내가 작년 가을에 부산진구청 문화원에서 서예를 쪼께 배워서 별로 잘 쓰지도 못하는데,

구청측의 권유로 작품을 겨우겨우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커서 우리집 오막살이에는 걸어 둘 공간이 여의치 않고, 더구나 우리 사무소에는 다른 작품도 많아서....

작품의 내용이 상동역과 관련이 많기에 이를 상동역에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그런저런 사연을 모아서...토막 글을 한편 엮어 보았습니다.

붙임화일로 올리오니 졸작이온데... 한번 읽어보시고 질정을 바랍니다.

 

 

살구꽃 핀 마을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 조봉익

 

 살구꽃 핀 마을.....

철길 주변의 풍경들이 자꾸만 변해간다. 복숭아꽃, 살구꽃 ...이런 단어들이 이제는 점차 아득하게 느껴진다. 들판을 가로지른 철길엔 전주의 행렬이 이어지고 그 길로 고속열차가 질주한다. 동무삼아 도란도란 집들이 들어선 풍경은 이제 조금씩 지난 기억 속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경부선 상동역도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그곳은 행정구역은 경남 밀양시 상동면이지만 경북 청도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내가 처음 철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시골역으로서 풋풋한 고향정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역이었다. 그 후 역명이 유천(楡川)역에서 상동(上東)역으로 개칭이 되었고, 작년에는 새로운 터널을 뚫어서 곡선구간을 직선화하여 철길을 옮겨 버렸다.

 철길 주변에는 숨어있는 지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일제와 해방, 그리고 6.25와 그 이후  6․70년대....그동안 우리 삶 속의 수많은 사연들이 오고가는 기적소리 속에 담겨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들은 수없이 그 길을 오가면서도 이러한 뭇 사연들을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상동역에서 북쪽으로 약 1km남짓 가면 남매시인 이호우님(1912-1970)의 생가가 있다. 그는 경북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유천마을 태생으로 위의 시는 살구꽃 핀 마을의 따뜻한 인정미와 정취를 노래한 유명한 시이다.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서로 포근하게 감싸주며 인간미를 꽃 피우고 살던 시골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의 누이동생 丁芸 이영도는 靑馬 유치환과의 인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정운은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국어교사가 된 청마는 서른 여덟 살의 유부남으로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을 보냈지만 정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불행하게도 청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20년에 걸쳐보낸 5000여 통의 편지 중에서 200통을 가려 뽑아 청마 사후에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는 책이 발간되어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사진 : 이호우 생가마을 오누이공원, 詩碑)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애매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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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시작하는 청마의 시 “행복”은 이제는 내 나이 또래들에게는 지난날 음악방송이나 연애편지에 한번쯤 인용하던 구절일 것이다. 기관사 시절에 수없이 지나쳤던 마을인데도 모르고 있었다가, 그곳 출신 직원과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한편 아내는 그동안 틈틈이 서예를 배워 왔다. 나는 서예를 모르면서도 아내 앞에서는 운필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아는 체를 하였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동안 구청 문화원에서 틈틈이 서예를 익혀온 아내가 하루는 습작을 가지고 왔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라고 적힌 습작은 내가 보기에는 古體로 제법 잘 쓰여진 글이었다. 아내는 동호인들 전시회 출품을 위해 집중 연습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 글을 보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봄비 내리는 날이면 창 밖을 보며 음미하던 借問酒家何處在(차문주가하처재)오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1)이라는 구절과 함께 상동역 주변의 이호우 남매 사연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조는 누가 지었고 그 오누이에게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면서 아는 대로 이야기 해 주었다.

 

 오늘도 열차는 상동역을 지나간다. 나는 운전사령실에 근무하다가 다시 친정소속으로 복귀한지 1년 반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고속전철 개통을 위해 고생하던 기억이 남는다. 그 사이에 아내는 살구꽃 핀 마을 액자를 큼직하게 표구를 하였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오랜만에 집에 온 딸과 함께 자평을 해보기도 하였다.  

  상동역장은 지난 시절 CTC사령팀장을 같이 근무했던 친구다. 이제 그는 자기 고향역으로 부임한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내 진정 축하해 주고 싶었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 뭔가 기억에 남을 선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내의 작품을 주기로 했다. 다름 아닌 역장님 고향선배 분의 시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자기의 정성을 들인 것이기 때문인지 상동역에 주기로 했다고 하니 왠지 아쉬운 모양이다. 꼭 딸 시집보내는 마음인가 보다. 아무래도 전시하기에는 졸작인데 마음에 들련지 매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본다


1)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路上行人欲斷魂(노상행인욕단혼), 借問酒家何處在(차문주가하처재),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청명이라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길가는 나그네 마음이 착잡해지네. 주막집 있는 곳이 어디쯤이냐 물으니, 목동은 말없이 저만치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

◈ 晩唐 때 시인 두목(杜牧)이 엮은 청명(淸明)이라는 시. 봄 비 내리는 마을풍경과 길을 가는 나그네의 심정이 잘 묘사된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