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이야기

事必歸正

경전선 2010. 4. 13. 22:53

살다보니 별 황당한 일을 다 겪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직장 이야기를 좀 적어야 겠다.

나 혼자만의 글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내 직장 소개를 잠깐 해보자. 내가 다니는 직장은 인원이 350여명... 하나의 소속으로서 결코 적은 인원은 아니다. 우리 소속의 주 임무는 열차운전인데, 심야에도 휴일에도 어쨌든 열차는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 많은 인원이 동시에 모이기도 어렵고, 사측에서도  어떤 전달사항을 전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인원이 6회로 나누어 한달이 한 번씩 교육을 받는다. 명목상으로는 일종의 안전교육이다. 즉 面對面의 기회이다보니 주로 경상도 말로 "단디~해라"라는 식이다. 안전교육이라 하지만 사고사례와 기술적인 내용도 교육하기 때문에 많은 승무원들이 교육이라 하면 일면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데.... 내 직장생활 34년에 오늘 같은 말은 처음 듣는다. 노동조합 지부장이 지부시간에 올라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중 경고 하는데, 앞으로 지도과장이 소집교육 시간에 경영평가 운운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이런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말 맘에 안들면 "경영평가에서 꼴찌를 하여 소장을 보내 버리겠다"고 하였다 한다. 그것도 승무원들이 모인 공석에서.... 참 기가 막힐 일이다.  

 

노사 입장을 논하기 전에,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도 300여명이 넘는 직장에 명색이 승무원을 지도운용하는 업무를 맡은 지도과장이 "승무원 여러분!, 요즘 우리 회사는 근간에 이러이러한 계획하에 업무가 진행 중이니 우리 모두힘을 합하여 잘 해 봅시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마라. 일단 거부하고보자는 식인가? 조금이라도 잘해 보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이 못해서 불필요하게 수고롭지 말고 그냥 평준화 되자는 것인가....

 

아마 생각컨데, 안전교육시간에는 안전교육이나 하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런 잣대대로 일사불란하게 되는가? 아마 자기가 소장이 되더라도 한달만에 대면한 귀한 자리에서 말로는 전달하지 못했던 당부사항을 전하리라 본다. 아니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근간의 회사 경영실적을 알리고 좀더 나은 실적을 위해서 독려하는 것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상식의 방법아닐까?  할 말과 아니할 말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한다.

 

나는 오늘 그런 말을 듣고 맥이 풀여 버렸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우리 힘을 다해 잘해 봅시다 라고 외치면, 엄중 경고를 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명색이 지도과장이 <우리 모두 같이 꼴찌되든지 말든자 아무렇게나 그거 하루하루 적당히 삽시다> 그래야 되는가?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내가 뭘 한다는 것인가? 판소리도 추임새가 있어야 신명이 나는 법이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오후를 보내는데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병자호란 때 주화파와 척화파의 논쟁이다. 주화파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었고, 이를 다시 최명길이 주어 모으면서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고, 또한 국서를 붙이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된다”(裂書者 不可無 而補書者亦宜有)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생각났다. 말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일을 해보자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이는 결코 출세를 바라거나 아첨을 하는 것도 아니요, 본분에 충실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당당함을 얻을 수 있고, 결국 뿌린대로의 평가를 받으리라. 좀 거창하게 말하면 立天下之正位하여 行天下之大道하자는 것이다. 사소한 술수에 신경쓰지 말고...

그리고 이런 생각은 얼마전 한명숙 전총리의 무죄판결에 대한 민주당 대변인이 인용했던, 간단 명료한 평가 한마디와 연결이 되었다. 그것은 <事必歸正....>. 세상사는 반드시 바른 곳으로 귀결되리라. 바른 곳으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