居然亭
차분한 혼자만의 오전이다.
오늘은 부산의 성신학당에서 조선통신사 옛길을 답사한다고 하기에 나도 동참하려고 했었는데,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어제 하루 전에 취소되었다.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용한 내 시간이 주어져서 한결 여유롭다.
漢詩는 입에서 요물요물..., 수 백 번 씹어보고 생각해 보면 제맛이 난다. 어제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고향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정자에 관한 글을 받았는데, 그 정자와 관련된 시를 혼자서 생각해 보고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전남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 가곡마을에 居然亭(거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우리는 加谷마을을 더실이라고 불렀다. (加 더할 가)
거연정은 제헌의원을 지낸 李晶來의 부친 이병일(1876~1928)이 지었다. 이병일은 보성에 유배를 왔던 영재 이건창(1852~1898)에게서 수학하였는데, ‘居然’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아들에게 정자기문은 이건창의 종제인 난곡 이건방(1861~1939)에게 부탁해서 받으라고 유언하였다(이건방이 쓴 거연정기)
그리고 이곳에는 석촌 윤용구(1853~1939)가 쓴 편액과 주련이 있다.
거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는 이곳 말고도 전국에 여러 곳 있다. 그만큼 ‘거연’이라는 단어가 유명했던가 보다.
거연정의 ‘居然’은 朱子詩에서 따 왔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하지만 나는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자 한다.
주자는 1183년(당54세) 武夷山 5曲 隱屛峰 아래에 精舍를 짓고 강학을 하게 된다. 그때 武夷精舍雜詠이라는 여러 수의 시가 있다. 그 첫 번째 시에....
琴書四十年(금서사십년) 거문고와 책 읽기를 즐긴 지 사십 년
幾作山中客(기작산중객) 거의 산중 사람 다 되었네.
一日茅棟成(일일모동성) 어느 날 띠 집을 이루니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 저절로 나는 자연과 어우러졌네.
이 시에서 幾作山中客을 몇 번이나 산중 사람이 되었던가라고 해석을 한 곳도 있는데, 아버지, 형님에게서 들은 바대로 거의 산중사람 다되었네로 풀고자 한다.
그리고 一日은 ‘하루만에’도 아니고 ‘어느 날’로 풀었다. 또는 ‘하루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居然은 무엇일까? 거연은 ‘저절로’, 또는 문득, 어느덧‘의 뜻이다.
즉 어느 날(하루는) 띠 집을 한 칸 짓고 보니, 저절로 샘과 돌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더라는 것이다.
泉石은 山林泉石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윤용구가 쓴 편액을 풀어본다.
閑爲水竹雲山主(한위수죽운산주)
靜得風華雪月權(정득풍화설월권)
한가로움은 물, 대, 구름, 산의 주인이 되고,
고요히 있으면 바람, 꽃, 눈, 달의 권리(천기)를 알 수 있다.
邵雍의 小車吟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華에는 꽃의 뜻이 있어서 통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나절이 간다.
끝으로 죽포형님이 쓴 위의 시를 찾아 본다. 2012년에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