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향에 다녀왔다. 가을 시제(시향)를 지내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시제라는 표현 보다는 묘사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전남 보성군 노동면 감정리... 순창조씨 세장산이 있다. 그 곳은 내가 자란 미력면과는 행정구역 명칭도 다르고 내 고향 마을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이다. 그 곳에는 우리 선조가 순창에서 보성으로 내려와 묻힌 매우 의미있는 곳으로 시제도 제법 성대하게 지낸다.
그 곳에 우리집안 재실이 하나 있다. 우리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다가 고등학교부터 객지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그곳을 가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몇 년전,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 다 돌아가신 후, 40대 후반에야 처음 그 곳 시제에 참석하고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곳에서 다름아닌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永陶齋... 1984년에 중수한 건물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4년전... 그 먼거리를 다니시며 노구를 이끌고 온갖 정성을 들여 건물완공에 정성을 기울이셨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우리 현주공파 족보를 간행하시고, 1988년에 작고하셨으니 아마 아버지의 마지막 공적이실 것이다. 내가 처음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형님이 쓴 현판과 아버지 이름이 적힌 重修記를 보고 정말 마음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가서 재실 사진을 몇장 찍어 왔다. 전체 외각의 큰 사진이 없어서 유감이다만....
아무튼 대들보, 상량문에는 무엇이라고 적혔을까 긍금하기도 하고, 그런 것을 배워두는 것도 공부일 것 같아서 더듬더듬 더 책을 찾아 본다.
단기 4306년 계축 정월 23일 임진 定礎 익일 계사 立柱 30일 ? ? 上樑 子坐 午向 伏願上樑之後(? ? 두글자는 사진판독 곤란), 그리고 첫 부분에 거꾸로 크게 海龍이라고 크게 적혀있고....
아마 이 부분은 언제 이 집을 지었노라 하는 기록의 의미인 것 같고...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축원 구절인 것 같다.
子姓忠孝 文武貴榮 縉紳冠冕 充溢門庭 水火无虞 風雨不競
자손들이 문무를 갖추어 귀하고 영화로우며 벼슬도 문 앞에 넘쳐나고 수해와 화마로 부터도 막아달라는 뜻...
그리고 한마디 또 있었다.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하늘의 세 가지 빛 즉, 해와 달과 별이 감응하시어 인간에게는 오복을 갖춰 내려 주소서
吾家有一客 名曰海中人 口含千丈水 能滅火精神
내 집에 객이하나 있으니 그 이름은 해중인이라. 천 길 물을 머금어서 능히 불을 다스리리라... 라는 뜻으로 화재예방을 기원하고 있다.
문중 공사는 자칫 말도 많은 법인데.... 때로는 의견을 조정하고, 한푼이라도 비용을 아끼려 애쓰시며 이 재각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리고 洛龜라고 크게 써 있고.... 아무튼 아버지 생각이 더욱 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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