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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洞庭湖 贈張丞相(망동정호 증장승상)

중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오늘은 여행자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려 보았다.이곳에도 보관해 두고자 한다. 중국 답사일이 다가옵니다.미리 알고 가자 싶어서 동영상 하나 소개 드립니다.또박또박 보기에 비교적 좋은 것 같습니다.혹시 어렵게 느껴지면, 그러면 그런대로 그냥 가볍게 흘려 보시옵소서.흔히 맹호연은 산수, 자연시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은근히 출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아래 해석은 동영상 속의 해석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베껴온 것임) 望洞庭湖 贈張丞相(망동정호 증장승상)(孟浩然 맹호연) 八月湖水平(팔월호수평)涵虛混太清(함허혼태청)팔월이라 호수 물, 언덕까지 넘실넘실허공을 머금어 하늘과 하나 됐네. 氣蒸雲夢澤(기증운몽택)波撼岳陽城(파감악양성)수증기는 운몽택(雲夢澤)에 자욱하고물결은 악양..

한시 2025.03.28

居然亭

차분한 혼자만의 오전이다.오늘은 부산의 성신학당에서 조선통신사 옛길을 답사한다고 하기에 나도 동참하려고 했었는데,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어제 하루 전에 취소되었다.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용한 내 시간이 주어져서 한결 여유롭다. 漢詩는 입에서 요물요물..., 수 백 번 씹어보고 생각해 보면 제맛이 난다. 어제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고향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정자에 관한 글을 받았는데, 그 정자와 관련된 시를 혼자서 생각해 보고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전남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 가곡마을에 居然亭(거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우리는 加谷마을을 더실이라고 불렀다. (加 더할 가) 거연정은 제헌의원을 지낸 李晶來의 부친 이병일(1876~1928)이 지었다. 이병일은 보성에 유배를 왔던 영재 이건..

한시 2024.10.19

어찌 이역에서 짐승들과 섞이랴

영광나들이를 마친 버스는 다시 부산으로 달린다.모두들 곤한 잠에 취해있고, 맨 뒷좌석의 나는 다시 폰을 만진다. 이러다보면 시간이 잘 가기에...불갑사 상사화 축제장에서 수은 강항선생 부스를 만났다. 그곳에는 작년에 강항문화제 때 사용했던 강항선생 어록 켈리그라피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그런데 그중에 아무리 보아도 의문이 가는 작품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왔다가 부산행 버스 속에서 되찾아 본다.安能胳域混牛羊(안능각역혼우양)이것이 무슨 뜻일까?우리말 해석에는 ‘어찌 타 짐승 놈들과 섞일 수가 있는가’라고 되어 있다.*胳 겨드랑이 각그래서 더 고전번역원 DB를 검색해 본다.睡隱集 看羊錄 涉亂事迹(섭란사적, 난리를 겪었던 일을 기록)에 나온다.'胳域'은 '異域'의 오기였다. 그래야 시의 의미도 무난하다.이 기회에..

문화, 유적 2024.09.26

화순 능주 영벽정 시

휴일에 낙서아내는 성당에 가고 혼자 남은 일요일 오전, 더위도 잊을 겸 화순군 영벽정 시를 풀어 보았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중딩 동창회 카톡에 올리려다가 망설여진다. 우얄꼬싶다....***********며칠 전 중학동창 카톡에서 능주에 있는 영벽정 이야기가 나왔다.오래전의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경전선 능주역 옆에 어떤 정자를 본 것도 같다.그런데 그 정자를 검색해보니 안내판에 김종직이 언급되어 있었다.김종직은 밀양태생인데, 언제 그곳에 갔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점필재집 연보를 보니 김종직은 57세 되던 1487년(성종18년) 5월에 전라도관찰사 겸순찰사 전주부윤이 되어 약1년간 있었던 것을 나온다. 아마 그 시절에 관내를 순찰한 것인가 보다.동문선과 점필재집에 실려있는데, 두군데 글자는 조금 ..

한시 2024.08.11

서경 구절, 天工을 人其代之

일전에 모처에 달았던 댓글인데, 이곳에 보관해두고자 한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아서 저라도 몇 자 적어 봅니다. 물론 틀릴 수 있습니다. (액자 사진 생략) 文 天工人其代之中天字也 (字가 맞는지, 혹시 言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文(글자)은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라는 글에 나오는 天이라는 글자이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예술 美에 유의해서 크게 한 글자 天을 쓰고 보니 나머지 공간 활용이 애매해서 덧붙여서 더 길게 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앎이 부족해서 작품이 주는 어떤 느낌이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 찾아 보았습니다. 위 구절에는 서경 우서 고요모에 나오는 구절이 일부 들어 있군요. 書經은 四書(虞書, 夏書, 商書, 周書)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 虞書에는 堯典..

고전 경학 2024.07.22

이건창과 보성

이른 점심을 먹고 몇자 적어 본다.폰을 만지작 거리다보니 한말의 선비 寧齋 李建昌(영재 이건창, 1852~1898)의 생애에 있어서 인터넷 자료가 잘못되는 것 같다. 이건창은 우리 고향 보성에 유배를 왔었기 때문에 내 고향 지식인들이 그와 인연을 짓기도 했다.보성이 자랑하는 서예가 설주 송운회 선생(1874년생)도 스무살 때 영재 이건창의 제자가 되었다. 나의 竹圃 형님 말씀에 의하면 설주선생은 원래 초명이 震會(진회)였는데, 영재가 雲會(운회)라고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궁금증은 영재 이건창이 보성에 와서 얼마동안 유배생활을 했을까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니 고종은 이건창을 1893년 8월 23일에 보성에 유배를 명했고, 1894년 7월 19일에는 공조참판으로 임명했다...

草廬를 다듬으며

이곳에 오랫만에 몇자 적어본다.예전에 블로그를 담녕재라 이름한 것은 삼국지 三顧草廬 부분에 제갈량의 초려에 쓰여진 柱聯 구절이라는 澹泊以明志, 寧靜以致遠에서 한글자씩 따서 담녕재라고 이름을 지었다.그 이면에는 훗날 내가 여유가 생긴다면 정말 華而不侈까지는 아닐지라도, 儉而不陋한 남향집을 집을 한칸 마련하면 당호로 붙이고자 하였던 것이다.그런데 그 사이 우선 내가 게을러진 것이 주 원인이고, 곁들여 눈도 침침해진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멀리하고자 하다보니 이곳이 다 허물어져 간다.더구나 현실적으로는 집값이 너무 오른데다가 나의 수입은 빠듯하기 때문에 담녕재 현판을 걸기에는 아마 쉽지 않을 것 같다.그래서리... 解絃更張이라는 말도 있는데, 느슨해진 신들매를 다시 조여매는 뜻에서 사이버 ..

담녕재 잡설 2024.07.08

男兒立志出鄕關

조회수 29회 2023. 10. 15. (옛날에 아버지게서 들려주신 구절, 내가 존경하는 임동석교수가 유튜브에서 했던 자세한 해설을 베껴와서 보관해 둔다) 立志出關 (임동석) 어릴 때 고향을 박차고 무조건 상경할 때 나로서는 참으로 결심을 다지도록 했던 시 한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 豈期埋骨先塋側? 人間到處有靑山! 그런데 누구의 시인지, 어떤 경우에 지은 것인지도 몰랐지요. 얼핏 듣기로 일본 스님의 시라 하더군요. 호기심이 들어 찾아보았더니 일부 검색 사이트에 이를 蘇東坡의 시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절대 아닙니다. 이처럼 검색 사이트는 너무 맹신하면 안 됩니다. 만약 蘇東坡의 시라면 일찍이 중국에 널리 애송되었을 것이며, 뒷사람이 수없이 인용하..

한문학 2023.10.16

공자의 부인 성씨?

베껴온 글이다. 우선 저장해 둔다 [或者의 (공자부인의 성씨가) ‘幷官氏’라는 설에 대한 반론] ● 모인의 주장; [諱丘字仲尼娶幷官氏生子鯉鯉生伋] ● 본인의 질문 댓글; ① 위 공자부인의 이름은 ‘幷官氏(병관씨)’가 아닌, ‘亓官氏(기관씨)’가 아닌지요? ② 문헌에는, “孔子夫人亓官氏。亓與丌同。特封大成至聖文宣王夫人。”입니다. ● 근거; 亓姓[성호사설 제15권 人事門] “자휘(字彙)를 상고하니, 丌의 음은 기로서 성이니, 당나라에 기원실(丌元實)ㆍ기사능(丌士能)이 있었다. 또한 기(亓)자도 있어 기(丌)와 같은데 이 자도 또한 성이니, 당나라에 기지소(亓志紹)가 있고, 송나라에 기빈(亓赟)이 있었으며, 명나라에 기선(亓宣)ㆍ기기(亓驥)ㆍ기시교(亓詩敎)가 있었다. 이 두 글자의 음과 뜻이 비록 같으나, 반드..

고전 경학 2023.04.25

동창회 유감, 漢詩

(Daum 블러그는 T스토리에 병합되어 버리고, 나로서는 블러그 관리에 매우 낯설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틈틈히 배워서 블러그 관리를 바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엊그제 3월 1일 고등학교 입학50주년 기념 반창회를 했다. 1박2일 일정으로 매우 알차고 일정 진행을 타이트하게 하였다. 서울 동창들이 추진하면서 사전회의를 몇번하고 아주 야무지게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면 자연스럽게 옛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마련인데, 집행부에서는 날더러 한시를 한 두 수 준비해오라고 했었다. 이에 나는 절구를 한 수 얽어서 보냈었다. 여기 그 시를 올랴두고자 한다. (사진 설명) 지금은 허물어버렸지만, 내가 공부했던 학교 교사, 1985년도에 모교가 의왕으로 이전한 뒤 아마 1987년쯤에 철거했을듯 싶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