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능주 영벽정 관련

경전선 2026. 10. 26. 17:19

오늘 광주의 강대의라는 분이 초대한 카톡방에 쓴 글이다.

얼마전 화순 능주의 映碧亭(영벽정)을 다녀왔습니다.
점필제 선생의 시가 걸려있더군요. 다녀와서 더 검색해보고 제 공부삼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기록물이 있습니다.
신증은 새로 더 보탰다는 뜻이고, 동국은 우리나라, 여지는 ‘수레처럼 만물을 싣고 있는 땅, 大地’라는 뜻이고, 승람은 보기 좋은 경치, 명승지라는 뚯의 지리서입니다.

즉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지리서가 나왔는데, 중종 때(1530년) 이를 보완하여 다시 펴낸 것이지요. 그 책에는 각 지역에 대한 지리, 역사, 물산, 인물 등에 대한 각종 사항이 적혀있습니다.

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능주에 영벽정이 있는데, 연주산 밑에 있다면서(連珠山下) 김종직의 시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이를 보면 적어도 1530년 이전에 영벽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다만 제 생각에는 영벽정에 題詠映碧亭(제영영벽정)이라는 제목의 시판이 걸려있는데, 이 시는 영벽정에 대한 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김종직의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지요.

김종직의 문집, 점필재집 21권에 아래와 같은 시가 있습니다.
제목이 있고, 小序가 적혀있습니다.
登綾城鳳栖樓。倥偬中。月上東峯。始悟今日爲中秋。與李都事 ,崔同年 。小飮。
능성 봉서루에 올랐다. 바쁜 가운데 달이 동쪽 봉우리에 뜨니 비로소 오늘이 중추임을 알았다. 이도사(承福), 최동년(哲錫)과 함께 간단히 마시다.
(*都事는 종5품 보좌관, 同年은 과거급제 동기, 同榜)

連珠山上月如盤(연주산상월여반)
草樹無風露氣寒(초수무풍로기한)
연주산 위에 달은 쟁반 같이 둥근데,
초목엔 바람도 없고 이슬 기운 차갑네.

千陣瑞雲渾欲盡(천진서운혼욕진)
一堆鈴牒不須看(일퇴령첩불수간)
천 겹의 상서로운 구름은 다 걷혀가려하는데,
한 뭉치 공문서는 굳이 보지 않으리라.
(*東文選과 신증여지승람에는 絮雲(솜털 같은 구름))

年華更覺中秋勝(년화경각중추승)
客况誰知此夜寬(객황수지차야관)
좋은 시절 중추가 최고임을 다시 깨닫고
나그네 처지 이 밤의 여유로움을 누가 알랴

㫌旆又遵西海轉(정패우준서해전)
指尖將擘蠏臍團(지첨장벽해제단)
깃발은 또 서해를 따라가야 하지만,
손끝으로는 둥근 게 껍질을 쪼개보노라.
( 㫌 기 정, 旆 기 패인데, 東文選에는 征(갈 정)으로 되어있음)

즉 이 시는 김종직이 추석날 능성 봉서루에 올라 그간의 쌓인 공무는 잠시 놓아두고, 다음 일정은 서해쪽으로 가야하지만, 이날 밤 만은 보좌관과 과거급제 동기를 만나 함께 게 안주에 술 한잔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즐긴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김종직은 밀양 태생인데, 언제 그곳에 갔었을까요?

점필재집 연보를 보니 김종직은 57세 되던 1487년(성종18년) 5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 전주부윤이 되어 약1년간 있었던 것을 나옵니다. 아마 그 시절에 관내를 순시할 때 능주를 들린 것 같습니다.

한편, 봉서루는 능주 관아에 있는 건물이고, 영벽정은 지석강 강변에 따로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벽정을 소개할 때 연주산 아래 있다고(連珠山下) 이 시를 인용한 바람에 아마 영벽정 시로 알려진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동문선에도 제목은 綾城鳳棲樓이며,
題詠映碧亭이라는 제목은 후대에 누군가 잘못 붙인 것으로, 당대의 기록은 아닌 것으로 생각돱니다.

폰으로 쓰는 글에 오자는 없는지 조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