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적

[스크랩] 어울림의 미학, 보성 소리

경전선 2010. 4. 29. 09:21

조상현 명창에게 보성은 ‘스승의 고장’이다. 유년시절 소리를 배운 정응민 선생의 생가가 있다.


보성에서 보낸 유년
“스승님 댁에서 막둥이아들처럼 자랐어요. 내 나이 지금 칠순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이곳에 오면 옛 기억이 생생해요. 집은 달라졌지만 터는 그대로예요. 이곳에 내 방이 있었고 저 뒤 대나무밭에서 스르륵 스르륵 대나무 소리 들으며 소리했던 기억도 나고요. 마을 다녀오시는 스승 보란 듯이 일부러 마당의 큰 돌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연습을 했어요.”

그의 말대로 마당 한 귀퉁이에는 사람보다 큰 키의 커다란 바위가 하나 들어앉아 있다. 그 돌을 북 삼아 장단을 맞춰가며 소리 연습을 했다. 조상현이 기억하는 스승 정응민 명창은 늘 선비의 학식과 기품을 잃지 않는 분이었다. 예술인다운 자유로움과 고귀한 면모를 두루 갖추었던 스승이 못내 그리운 날이다. 변성기로 소리가 잘 되지 않던 시절, 한번은 소리는 뒷전에 두고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북 연습만 하는 조상현을 보다 못한 스승이 심하게 꾸짖은 일이 있었다. 스승은 그의 손에 들린 북을 빼앗아 마당에 내동댕이치며 “광대는 넓은 무대에 서는 큰 사람이다. 북을 치려거든 지게나 져라” 하며 호통을 쳤다. 못내 서러웠던 제자는 4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만 이제나저제나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다. 석 달 열흘간 다시 죽어라고 소리를 연습해 섣달그믐에 명절을 쇠러 다시 스승의 집으로 돌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의 나이 16세, 그때로부터 53년이 흘렀다.

보성 소리가 사랑을 받고 또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어울림의 역사 덕분이다. 서편제에서 출발한 소리에 동편제를 융합하고 여기에 중고제를 더한 것이 바로 보성 소리다. 박유전 명창이 서편제 소리를 정립하고 정재근 명창에서 정응민 명창으로 넘어오면서 동편제와 중고제의 소리가 융합되었다. 그 아래로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등으로 보성 소리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판소리의 90% 이상이 다양한 소리의 유파를 조화롭게 빚어낸 보성 소리를 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조상현 명창의 설명이다.

보성 소리의 산 역사를 담고 있는 정응민 생가에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관람객의 출입은 언제나 반긴다. 실내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생가 마당과 집 주위를 돌아볼 수 있도록 개방된다. 판소리의 명맥을 잇는 집안답게 간혹 이곳에서 자손들이 소리판을 벌이는 일도 있다.

득음폭포는 있어도 득음은 없다
조상현 명창의 추억이 서린 정응민 생가 앞 마을길을 그와 함께 걷는다. 마을은 풍요롭고도 고요하다. 저 멀리 부드러운 능선이 껴안듯이 논밭을 감싸고 있는 모양이 엄마의 품에 안긴 듯 푸근하다. 정응민 생가에서 15분 정도 걸어 나오면 득음정과 득음폭포를 만난다. 한 소리꾼이 마치 폭포와 싸우듯 소리를 내지르다가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얻는, 어디선가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은 득음을 바라는 소리꾼들의 애절한 마음에서 비롯한 이름일 것이다. 마을과 가까우면서도 분리된 장소. 아담한 득음폭포 곁 득음정에 앉아 떨어지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책이라도 읽을 양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으리라.

“폭포 소리보다 사람의 소리가 더 멀리 나가야 해요. 보통 사람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에 묻혀버리기 쉽지만 명창이라면 우렁찬 폭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노래할 수 있어야지요.”

하지만 조상현 명창에게 ‘득음’이란 없다. 거친 돌을 갈고 닦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뿐,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코 득음의 경지란 없을 것이라는 겸손함. 명창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물소리 하나만 해도 ‘후루루루루루’, ‘콸콸콸콸’, ‘주루루루룩’, ‘출렁출렁’ 여러 가지 소리가 있지요. 판소리는 의성어나 의태어도 맛깔 나게 표현하며 언어와 소리의 유희를 즐기는 고급 문화랍니다.”

7세 때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를 들으며 ‘이 작은 상자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하는 호기심으로 판소리와 연을 맺었다는 조상현 명창.  
보성에 오면 그는 타임머신을 탄 듯 자연스레 정응민 명창의 막둥이로 돌아간다.

미니 인터뷰
4대째 내려오는 보성 소리의 명가
정응민 생가에서 만난 명창 정회석


가을 저녁, 정응민 생가 대청마루에서 정회석 명창(44)이 부르는 ‘수궁가’가 한옥을 울린다. 지난 10월 21일 토요일 밤, 정응민 생가에서 벌어진 판소리 잔치의 풍경이다.‘판소리 명창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펼쳐진 순례 공연이다. 한옥을 빙 에워싸고 방이며 마루, 마당에 둘러앉은 50여 명의 ‘귀 명창’들은 지금 우리 소리에 흠뻑 취해 있다.

정응민 명창의 손자인 정회석 명창은 아버지 정권진 명창에 이어 4대째 보성 소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정재근-정응민-정권진-정회석). 집안 또한 자손들이 모두 국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큰형 정회천 씨는 고수를, 둘째 형 정회완 씨는 해금을 연주한다. 삼형제의 아내들 역시 해금과 가야금 등 국악기 연주자다. 특히 소리꾼의 피를 이어받은 정회석 명창은 어릴 때부터 ‘아기 명창’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30년 넘게 우리 소리에 빠져 있다. 국립국악원 소속으로 판소리를 하면서도 늘 소리에 대한 갈망으로 목이 마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의 명성과 전통을 제대로 이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출처 : k한강
글쓴이 : k한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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