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여행기를 쓰다가는 너무 힘들다. 따라서 간략간략하게...)
유리창 거리를 갔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 거리... 옛날에 유리가마 공장이 있던 곳이라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단다. 물건이 조금 비싸다고 한다. 나는 그런 줄 모르고 그냥 아내의 기념으로 두인을 하나 샀다. 見賢思齊....
견현사제 글귀를 이 기회에 더 알아보자.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말,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어진이의 행동을 보고는 그와 같기를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이의 행동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중식 후 이화원 관광을 했다. 이화원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의 여름 별장...(아마 서태후 전에도 있었겟지...?(미확인))
이화원... 공원이라고 해서 자칫 梨花園, 또는 李花園을 연상하기 쉽다. 그런데 죽포형님게서는 頤和園이라고 한다.
즉 기르다, 수양하다 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란다. 호수 크기가 천안문광장의 7배나(?) 된단다.
이화원 관광은 반드시 서태후 이야기를 알고 가야 제대로 느길 수 있는데, 아쉽게도 나는 청나라가 망해가는 과정, 서태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갔다. 청나라는 孫文(쑨원)이 이끄는 남경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망한 것 같다. 신해혁명이다.... 그 후 장개석, 모택동 등 군벌의 혼란기를 거쳐 1949년 중화민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차분히 가이드 이야기를 들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가이드를 탓할 수도 없다. 모두 내 잘 못이지....
(네이버 백과에는 서태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해 놓았다. 서태후는 서쪽 궁궐에 거쳐해서 서태후... 동태후도 있단다.)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공친왕(恭親王)과 공모하여 쿠데타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모후(母后)로서 동태후(東太后: 함풍제의 황후로 慈安皇太后라고도 한다)와 함께 섭정이 되었다. 1875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의 아들을 옹립, 광서제(光緖帝)로 즉위시켜 자신은 섭정이 되었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국정의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1898년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입헌파 캉유웨이[康有爲]에 접근, 신정을 실시[戊戌變法]하여 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를 부추겨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로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하는 무술정변(戊戌政變)을 일으켰다. 의화단(義和團)의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이용하여 열강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으나, 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시안[西安: 陝西省]으로 피신하였다.
모든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던 서태후도 베이징[北京] 귀환 후에는 입헌 준비, 실업(實業), 교육의 진흥 등 신정을 실시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배외정책에서 굴욕적 외교로 전락하여,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청왕조의 권위 실추와 함께 혁명운동·입헌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서제가 죽은 하루 뒤에 죽었다.
이화원, 10만명이 5년동안 파서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흙으로 쌓아서 만수산을 만들었다고 gksmsep.... 믿거나 말거나...
호수 이름은 곤명호라고 한다. 말이 호수이지 바다 같다. (원래 호수가 있었을 것이고, 산도 좀 있었겠지...)
멀리 보이는 만수산..... 거기서 경치를 바라보면 정말 좋을 것도 같은데....
24살에 혼자된 서태후가 춘정을 못이겨 남정내를 불러들여 밤이면 밀애를 즐겼다는 樂壽堂, 그리고 나서 소문이 날까봐 죽였데나? 몹쓸 여자...
그리고 서태후가 비오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고도 호숫가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복도를 만들었다데 길이가 무려 778m, 14000점에 달하는 온갖 그림 들...
회랑 끝편에는 돌로 만든 배가 있었는데, 정말 물위에 떴을까? 아니란다.
위정자의 환락과 사치, 한나라의 멸망....간혹 이런 과정에 여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면 역사는 반복된다.
만수산 위에 무슨 절인가? 큰 건물이 있는데... 올라 가봤다 치고... 사진만 찰칵
이렇게 해서 이화원 관광을 마치고 제남으로 향하기 위하여 이른 저녁을 먹으로 갓다.
가는 길에 올림픽경기장이 보이고....
무슨 호텔이라는데.... 이색적인 디자인의 건물도 보인다. 중국의 거리는 대단하다. 널찍널찍하게 뚤려있는....
나는 돌아와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전공에 관계없이 중국어는 좀 해야 되겠더라"
... 그래서 훗날 차분하게 아이들과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천안문 광장, 이화원 등이다.
이렇게 빠듯한 북경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제남으로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