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추사선생을 소재로 몇 자 적어서 어느 카페에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논어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고령임에도 카톡을 주셨는데, 그에 대한 답례로 심심풀이로 읽어보시라고 보내드리고자 그 글을 여기에 다시 옮겨와 등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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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런 때는 저에게는 인터넷이 아주 아주 좋습니다.
인터넷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저는 제주도 여행을 했습니다.
물론 가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제주도는 역시 가 볼만한 여행지이더군요.
천연적인 절경 뿐 만이 아니라 인공의 아름다움도 참 좋았습니다.
가는 곳 마다 예쁘고 깔끔하게 잘 다듬어 놓았던데, 그런 곳만 다녀서 그런지 아들은 저에게 추사유배지는 왜 안가느냐고 그랬습니다. 사실 추사적거지는 사람들이 여행코스에 많이 넣지는 않더군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가보자는 아들의 제의를 은근히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대정의 추사적거지를 찾았지요. 마침 추사선생이 거처하던 초가집은 공사 중이었고 기념관에 들렸습니다.
(아래 사진은 공사가 끝난 요즘 찍은 것을 베껴 온 것입니다)
추사선생은 54세에 제주도에 귀양와서 9년간을 머뭅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참 무던하고 독합니다. 다산선생은 18년.... 군대 3년도 지루한데, 요즘 같이 기차가 있나, 전화가 있나.... 지금은 관광지로 꾸며놓아서 깨끗해 보이고 그렇지... 아마 추사선생이 거쳐하던 그 시절에는 정말 초막에 오두막집, 주변 환경, 생활도구도 아주 열악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 풀리지 기약도 없고...찾아 오는 사람도 없고....그렇다고 세찬 파도를 넘어 갈 수가 있나....
아무튼 거기서(귀양살이 3년때) 추사선생은 보고싶은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접하게 됩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무튼 유물 기념관에는 역시 많은 서화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 말에 의하면 인근의 녹차밭 회사인 (주)태평양에서 기증하였다는 눈에 띄는 한시 작품이 한점 있었습니다. 하필 사진을 못 찍게 하여서 저는 숨어 있는 작품도 아니고 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작품이기에, 적어도 책이나 인터넷에도 나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첫 구절만 외워 가지고 왔습니다. 좀 베껴 올껄....
一院秋苔不掃除.....
그런데 왠걸...돌아와서 찾아보아도 도무지 못 찾겠더군요(지금은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서점에도 갔었는데, 어느 서첩에서 그 구절을 쓴 글씨작품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몰래 사진을 한장 슬쩍 찍었지요(사진 참조)
그러나 서예에 문외한인 저로써는 그 뜻을 알아볼 수 없었지요. 그러다가 어렵게 한양대 정민교수의 해석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들어 팠더니, 이런 나에게 직장 후배가 저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행님요, 그기 뭔데 그래 메칠을 집착 하시는교?...."
그래서 네가 이렇게 답했죠.
"어험, 아직, 자넨 모르지. 어떤 사람이 자꾸 병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네. 옆사람이 뭐가 있는데 저라노 했다지?..., 아무튼 병 속에도 하늘이 있는 법(壺中有天), 남들은 몰라도 저마다 다 추구하는 맛이 있는 거라네."
一院秋苔不掃除(일원추태부소제)
風前紅葉漸飄疎(풍전홍엽점표소)
虛堂盡日無人過(허당진일무인과)
老樹低頭聽讀書(노수저두청독서)
집 가득 가을 이끼 비 들어 쓸지 않고
바람 앞 붉은 잎은 바람 날려 자꾸 지네.
빈 집엔 온 종일 지나는 사람 없고
늙은 나무 고개 숙여 책 읽는 소리 듣네.
언제 지은 시인지 알 수는 없지만(아마 제주 유배 시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쓸쓸한 가을날 텅빈 유배지가 연상됩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빈 집에 글 읽는 소리, 그저 늙은 소나무만이 들어준다.... 참 그럴듯한 표현입니다. 시 한 구절에 며칠을 집착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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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바구 나온 김에... 추사선생이 부인의 죽음을 듣고 지었다는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이하 베껴온 글)
어떻게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남편 아내 바꾸어 태어나리.
천리 밖서 나는 죽고 그댄 살아서
이 마음의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那將月老訴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만년에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고단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서울 집에서 아내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귀양살이에 지친 남편에게 편지와 옷가지를 보내며 집안 대소사를 알뜰살뜰 챙기던 아내, 평생 그늘에서 애만 태우던 그녀의 일생을 돌이키며 추사는 견딜 수 없는 자책감과 슬픔에 빠져들었다. 제목은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이다.
정작 평생의 고락을 함께 했던 아내의 죽음 앞에, 가서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참담하였다. 그래서 그는 남녀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월하노인을 찾아가서, 내세에는 부부의 역할을 바꿔서 다시 한번 만나게 해줄 것을 하소연하겠다고 했다. 단지 내세에도 부부로 다시 만나자는 허망한 다짐을 두려 함이 아니다. 그때도 천리 밖 멀리 서로 떨어져 있다가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먼저 죽고 당신은 살아서 지금의 이 내 참혹한 슬픔을 느껴 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저 읽기만 해도 당시 추사의 처연한 슬픔이 감염되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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