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보자. 조금은 색다른 일을 경험했다. 아마 오늘 겪은 일은 그다지 자주 마주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그제 직장 동료 한분이 갑자기, 정말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장례절차는 도시의 장례가 대개 그렇듯이 세태의 흐름대로, 장례식장에서 발인하여 화장 또는 매장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어제 오후, 오늘 장지로 가는길에 직장에서 노제를 지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장례식장측 상황과 직장의 업무공간 사이에서 장례절차에 대한 충분한 교감이 없이 어제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나는 직장일에 바쁘다보니 장례절차의 세세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 못한 것이다.
다만, 아... 그냥 평소 고인의 발자취가 남은 곳이기에 잔을 한번 올리고 가는 모양이다 할 정도로...
고인을 보내는 마음이야 더 없이 애석하고 슬프지만, 일상 업무도 바쁜데 갑자기 부산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우선 노제를 지낼 장소가 검수차고 공사 관계로 노면을 파고 공사 중 이라서 공사업체에 공사중지 및 협조를 얻어내야 했고,
다음은 노제 절차, 그것도 고인이 다니던 직장에서의 마지막 禮인데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절차 문제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약력소개, 유족헌작, 추도사, 직원분향 등 격식(禮)과 애도분위기를 생각하며 준비를했다.
굳이 약력소개도 해야 하는가 고민도 해봤다.
급히 추도사를 작성하고 누가할 것인지 사람을 정하여 연습토록 하고, 헌작 순서를 정하고, 弔意 汽笛도 준비하고....
한편 전통 방식을 가미하여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편의주의로 할 것인가의 문제에 부딪혔다.
발인(영결)을 하고 장지로 가는 과정에서의 노제인데..... 경험도 없고....
아무튼 진행은 내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영구차가 도착하기 직전에 난감함에 빠졌다.
퇴직 선배 한분에 식순을 보더니 누가 헌관이 되느냐 하는 부분을 지적하셨다.
사실은 그분이 이번 路祭 절차를 주관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명색이 300명이 훨씬 넘는 소속이고, 勞社 공조직이 있는데 굳이 퇴직선배를 의지하는 것도 모양새 이상했다.
나는 그냥 유족 대표가 먼저 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배 왈, 이 노제를 주관한, 즉 제물을 준비하여 상을차린 사람이 헌관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로서는 정확한 지식은 없지만, 얼핏 그 선배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꼭 그렇게 따진다면, 이 장례를 총괄하는 護喪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요즘엔 호상이 아예 없거나, 이름만 있고 없어진지도 오래다)
물론 나도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헌관이 꿇어 앉아 잔을 드리고, 그 좌측에서 축관이 헌관을 보고 앉아서 추도사를 낭독하면 좋겠지만,
더구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소속장이 그렇게 까지 응하실지도 문제였고,
그렇다고 노조지부장이 먼저 나선다거나, 소장, 지부장을 제쳐두고 친구들이 헌작을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
나는 돌발상황에서 확실하게 결정을 못한 채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직원들도 120여명 정도가 모였다.
그러는 사이 영구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차에서 내린 장의사 같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나에게 대뜸 제물은 어디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내가 답변을 못하자, 노제 제물은 노제를 치르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순간... 아니 그렇다면 제물도 차리지 않고 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맨 손으로 절 만하는 노제를 지낸단 말인가?
이 불손한 책임, 준비 소홀한 책임을 내가 사회를 본다는 이유로 내가 다 뒤집어 써야 한단 말인가?
나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아니 공기업에 장례비용이 책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인과 평소 친한 사람들이 이것으로 제수를 마렵합시다 하고 사전에 준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회를 진행한다는 명목의 나에게 제물을 내 놓으라면 어떻게 하나?
나는 노제 제수야 요즘에는 거의 100%가 영구차에 그냥 싣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세상에 도회지 직장생활하는 남자들이 언제 장을 보아서 노제 음식을 마련하겠는가?
오늘도 다행이 미리 영구차에 준비되어 있던 음식으로 상을 차려서 엄숙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처음에 나에게 왜 그랬을까? 일부러 흡사 요즘 사람들은 뭘 통 몰라서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식이었는가?
아무튼 고인 덕분에 인생살이 한 모습을 하나 더 배운 것 같다.
헌관 문제도 그 선배님의 의견을 감안하여 나는 결국 다음과 같이 가닥을 잡았다.
즉 노제 시작전에 방송 멘트로 옛 전통은 이러이러하게 했었다. 그렇다면 오늘 노제는 응당 이러이러하게 해야되겠지만,
편의상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하고자 한다 라고 안내 멘트로 대신하고, 맨처음 구상대로 노제 절차를 이어 갔다.
추도사 부분도 축관 옆에서 읽는 것 보다는 따로 절차를 이름지어 추도사를 올리고 재배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아마 선배님 시각으로는 많이 아쉽고, 잘못된 예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준비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모두들 고만고만해서 어디 자문을 받을 수도 없고, 세태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전후 사정도 모르고 옛 문화에 더 둔한 후배들로부터는 잘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튼 오픈 된 공간에서 100여명이 넘는 눈으로 지켜보는데 저마다 잣대가 달라서 흠이 잡히기 쉽다.
정말 옛날에는 成服 문제로 귀양이나 죽음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말도 많고 복잡한 것이 喪禮였다.
수군수군 거릴수도 있고... 흠잡힐 수도 있고......
祭如在라고도 하였는데, 격식과 정성의 조화에 대하여 생각해보며, 다시한번 오늘 하루를 더듬어 본다.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화(主和)와 척화(斥和) (0) | 2010.04.13 |
---|---|
남해 설흘산 등산 (0) | 2010.03.24 |
[스크랩] 당신께만... (0) | 2010.03.04 |
막고 퍼내자. (0) | 2010.03.01 |
노제예법에 대한 성균관 답변 (0) | 2010.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