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尙書)>>「순전(舜典)」에서는 "시는 생각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말을 길게 읊은 것이다.(詩言志, 歌永言.)"라고 하였는데, 이는 경전에 보이는 시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서는 "그 말을 읊은 것을 시라 하고, 그 소리를 읊은 것을 노래라 한다.(誦其言, 謂之詩. 詠其聲, 謂之歌.)"고 하였다. 따라서 시(詩)와 노래(歌)는 원래 하나였다.
<모시대서(毛詩大序)>에서는 "시란 생각이 움직인 것이다. 마음에 있으면 생각이 되고, 말로 표현되면 시가 된다. 감정이 안에서 움직여 말로 나타나게 되는데, 말로써도 부족하기 때문에 감탄하고, 감탄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길게 노래하며,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면 저절로 손발을 흔들며 춤추게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情動於中, 而形於言, 言之不足, 故嗟嘆之, 嗟嘆之不足, 故永歌之, 永歌之不足, 不知手之舞之, 足之蹈之也.)"라고 하였고, <<예기(禮記)>>「악기(樂記)」에서는 "시는 그 생각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그 소리를 읊은 것이며, 춤은 그 모습을 움직인 것이다. 이 삼자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뒤에 즐거움이 뒤따른다.(詩, 言其志也. 歌, 咏其聲也. 舞, 動其容也. 三者本於心, 然後樂氣從之.)"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시(詩) 악(樂) 무(舞)는 삼위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기>>의 주에서는 "시는 이어받은 것을 말한 것이다.(詩之言承也.)"라 하였고,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명시(明詩)」에서, "시란 지(持)다. 사람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경>> 삼백편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결국 내용은 사악함이 없다는 순수성으로 귀결된다. 이에 시를 지(持)라고 풀이한 것은 논리에 부합된다.(詩者, 持也. 持人情性, 三百之蔽, 義歸無邪, 持之爲訓, 有符焉爾.)"라고 하였다.
공영달(孔潁達)은 <<모시정의(毛詩正義)>>에서, "시란 승(承)이고, 지(志)이며, 지(持)이다. 승(承)이란 군왕의 정치의 선악을 계승한다는 뜻이고, 지(志)란 자기의 생각을 펼쳐서 시를 짓는다는 뜻이며, 지(持)란 시를 짓는 까닭이 사람의 행실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지키기 위한다는 뜻이다.(詩者, 承也, 志也, 持也. 承者, 承君政之善惡. 志者, 述己志而作詩. 持者, 爲詩所以持人之行, 使不失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명칭은 하나지만 그 의미는 세 가지이다.
백거이(白居易)는 <여원구서(與元九書)>에서, "육경(六經)에 대해서 말하면 시가 제일 으뜸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성인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기 때문에 천하가 평화로워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으로는 감정 보다 나은 것이 없고 말보다 먼저인 것이 없으며 소리보다 절실한 것이 없고 내용보다 깊은 것이 없습니다. 시란 감정에 뿌리를 두고 말에서 싹틔우고 소리에서 꽃피우고 내용에서 열매를 맺습니다.(就六經言, 詩又首之. 何者?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感人心者, 莫先乎情, 莫始乎言, 莫切乎聲, 莫深乎義. 詩者, 根情, 苗言, 華聲, 實義.)"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감정과 내용은 시의 본질이고, 말과 소리는 시의 외형이다.
상술한 여러 설을 종합하고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여 시에 대해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다.
시에 대한 정의 : "시란 감정에서 시작하여 사물에 느낌을 받아 생각을 읊조리는 것으로, 교화에 효용이 있고 예술성과 규율성을 가진 운문이다."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감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은 감정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감정이 안에서 움직이면 반드시 말로 나타나기 때문에 시는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물에 느낌을 받아 생각을 읊조린다"는 것이란 사람의 일곱가지 감정이 사물에 호응하여 느낌을 받는다는 뜻이다. 시의 비흥(比興)은 사물에서 느낌을 받아 일어난 것이지 저것으로 이것을 형용한 것은 아니다. 사물에 의탁하여 지은 글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충분히 다 말할 수 없다.
"교화에 효용이 있다"는 것이란 바로 시의 특징을 말한 것이다. <<예기(禮記)>>「경해(經解)」에서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나라에 들어가면 교화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사람됨을 온유돈후 하도록 하는 것이 시의 교화이다.'(孔子曰, 入其國, 其敎可知也. 其爲人也, 溫柔敦厚, 詩敎也.)"라고 하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서는, "봄과 가을에는 예악(禮樂)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서(詩書)를 가르친다.(春秋敎以禮樂, 冬夏敎以詩書.)"라고 하였다. 장학성(章學誠)은 <<문사통의(文史通義)>>에서, "후세의 학문은 육예(六禮)에 근원을 두고 있으나 대부분은 시교(詩敎)에서 나왔다.(後世之文, 源於六禮, 而多出於詩敎.)"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시는 교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예술이란 말은 대체로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지혜의 산물로 진(眞), 선(善), 미(美)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의 감정은 진에 근본을 두고 있고, 시의 내용은 선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시의 소리는 미에 근본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영백과전서>>에서는 시가와 음악을 예술 범주에 넣고 있는 것이다.
"규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란 시의 형식을 가리켜 한 말이다. 예를 들어, 근체시는 한 수에 정해진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자수가 정해져 있으며, 각 글자마다 평측이 정해져 있어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고시는 비교적 자유롭기는 하지만 구성과 용운(用韻)에 있어서는 역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다.
"운문"이란 <<문심조룡(文心雕龍)>>「총술(總術)」에서는 "지금 사람들은 운이 없는 것이 필(筆)이고 운이 있는 것이 문(文)이라 생각한다.(今人以爲無韻者筆也. 有韻者文也.)"라고 하였고, 유희(劉熙)의 <<석명(釋名)>>에서는 "문(文)이란 여러 가지 색깔의 무늬를 모아서 비단에 수를 놓은 것이고, 여러 가지 글자를 모아서 아름다운 수를 놓듯이 글을 지은 것이다.(文者, 會集衆彩, 以成錦繡, 會集衆字, 以成辭義, 如文繡然也.)"라고 하였다. 시는 문채(文采)와 성운(聲韻)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운문의 일종인 것이다.
이상의 해설을 종합하면, 감정에서 시작하여 사물에 느낌을 받아 생각을 읊조리며 교화에 효용이 있는 것이 바로 시의 본질이며, 규율성을 가진 운문이 바로 시의 형식이다. 예술성을 가진 것에는 본질과 형식 양자의 의미가 다 들어 있다. 이로써 시의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분명하게 가질 수 있다.
(龚嘉英 著 <<詩學述要>>, 김덕환 역)
[출처] 중국문화 - 시의 의미|작성자 다크블루
'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임시보관(仁아런?) (0) | 2011.02.02 |
|---|---|
| 다시 생각해 보는 어부사 (0) | 2011.01.15 |
| 열녀전(모의편) (0) | 2010.11.22 |
| 김부식과 정지상 詩話 (0) | 2010.11.18 |
| 정민교수의 행복한 시읽기 (0) | 201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