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

다시 생각해 보는 어부사

경전선 2011. 1. 15. 11:33

 얼마 전에 아들이 다녀갔습니다. 이제 대학 졸업을 눈 앞에 두었으니, 외모와 생각 모두 이제는 어엇한 성인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2010년을 보내면서 그믐날 밤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어부사를 인용하였지요.

 

어부사는 왠지 한번 쯤 더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어부사를 처음 배울 때 아래와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선 어부사를 굴원이 정말 직접 지었을까?(이 부분은 오류선생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어부사가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핵심적인 의의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굴원처럼 살아야 되느냐, 아니면 어부처럼 살아야 하는냐 하면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별 깊은 생각없이 그래도 굴원처럼 고고하게 살아야 되겠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저도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그동안 세상살이 외물과 접해 보고, 그리고 어부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참고하면서 어부사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이라는 부분에 더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젊어서는  별다는 맛을 못 느끼던 老莊사상이 나이들면 더 가까히 다가올 수 있는 점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인터넷 네이버에 德甫라는 분이 운영하는 불로그(德甫방)에서 어부사에 대한 글을 만나서 이 기회에 옯겨와 싣습니다.

덕보라는 분이 어부사에 글을 써 놓으니 여러 덧글이 달렸는데, 그 덧글까지 발췌하여 옮겨왔습니다. (이하 퍼 온글)

*******************************

屈原이 旣放에 游於江潭하여 行吟澤畔할새 顔色憔悴하고 形容枯槁러니

굴원이 기방에 유어강담하여 행음택반할새 안색초췌하고 형용고고러니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至於斯오

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아 하고지어사오

屈原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見放이로라

굴원왈 거세개탁이어늘 아독청하고 중인개취어늘 아독성이라 시이견방이로라

漁父曰 聖人은 不凝滯於物하여 而能與世推移하나니

어부왈 성인은 불응체어물하여 이능여세추이하나니

世人皆濁이어든 何不屈其泥而揚其波하며 

세인개탁이어든 하불굴(흐릴 굴, 삼수변)기니이양기파하며

衆人皆醉어든 何不脯其糟而철其리하고

중인개취어든 하불포(먹을 포, 밥식변)기조이철(마실 철)기리(묽은술 리)하고

何故深思高擧하여 子令放爲오                     

하고심사고거하여 자령방위오 

屈原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이요 新浴者는 必振衣라하니

굴원왈 오문지하니 신목자는 필탄관이요 신욕자는 필진의라하니

安能以身之察察로 受物之汶汶者乎아

안능이신지찰찰로 수물지문문자호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矣乎아

영부상류하여 장어강어지복중이언정 안능이호호지백으로 이몽세속지진의호아

漁父莞爾而笑하고 鼓世而去하여

어부완이이소하고 고예(노 예, 나무목변)이거하여

乃歌曰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요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

내가왈 창랑지수청혜어든 가이탁오영이요 창랑지수탁혜어든 가이탁오족이로다

遂去하여 不復與言하니라

수거하여 불부여언하니라

 

굴원이 쫓겨나 강과 연못에서 노닐어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생기가 없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하자,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이 홀로 깨끗하고, 온 세상이 취하였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으니, 이 때문에 추방을 당했노라."하였다.

어부가 이렇게 말하였다.

"성인은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옮아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거든 어찌하여 그 진흙을 휘젓고 그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여러 사람들이 모두 취하였거든 어찌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를 마시지 않고, 무슨 연고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여 스스로 추방을 당하게 한단 말인가."

이에 굴원이 대답하였다.

"내가 들으니,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한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남의 더러운 것을 받는단 말인가.  내 차라리 소상강 강물에 달려들어서 강 고기의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인가."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돛대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그는 마침내 떠나가서 다시는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덕보 2005/08/22 21:17 답글
역시, 달구님 때문에 어부사가 생각이 나서 아무 말 없이 포스팅해 보았는데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ㅎㅎ 우리나라 곳곳의 좋은 계곡 너럭바위를 보면에 보면 흔히 '탁족대'라 이름 붙인 곳이 많지요.
설레임 2005/08/22 22:01 답글
덕보님, 어부의 맨 마지막 노래, '창랑의 물이 맑으면~"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달구님의 '나혼자 깨끗하다'는 오만은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하는 것이란 말이 참 와닿습니다^^
덕보 2005/08/23 13:54 답글
또 한 번 역시, 선입견이 없는 맑은 눈은 금방 문제를 찾아내시는군요.
이 말은 참 묘한 말입니다. 듣는 순간은 금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곰곰 생각해 보면 꽤 어려운 말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지요.

'창랑'이란 글자 뜻대로는 '넓은 바다의 푸른 물결' 정도의 뜻이 되겠지만, 여기서는 강이나 냇물의 이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滄浪은 水名이라). 황야를 가로 질러 흘러와 흙탕물로만 된 강과 산에서 내려와 맑은 물로만 된 강 두 줄기가 합쳐서 만들어진 중국의 강을 말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글의 전체 문맥으로 보면 우선 이런 말로 쉽게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을 대할 때 어떻게 항상 강물이 맑기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맑은 강도 있고 흐린 강도 있으며, 같은 강물도 맑을 때가 있고 흐릴 때가 있다. 또 맑은 강은 맑은 대로, 흐린 강은 흐린 대로 쓸 일이 있다. 강이 맑으면 소중한 내 갓끈을 씻으면 될 것이고, 강이 흐리면 더러운 내 발을 씻으면 될 것이다.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는 것과 같은 일인데, 머리와 얼굴의 작은 더러움보다 더 깨끗한 물에는 갓끈을 빨고, 그보다는 더럽지만 발의 때보다는 깨끗한 물에는 발을 씻는다면 모두 쓸모가 있을 것이다. 너 스스로 깨끗한 얼굴과 더러운 발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강물은 맑기만을 바라서, 그 맑은 물에서만 세수도 하고 발도 씻으려 할 필요가 있는가.'

풀이한 이 말은 일종의 상징일 것이므로, 다시 여러 해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쉽게 떠오르는 것은 우선 '혼자 고고한 척 말고 시류에 따라 살아라.'라는 해석이 있을 것이고, 또는 '세상에 절대 진리는 없다.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러니 절대적 진리에 대한 헛된 고집과 망상을 버려라.'도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것으로는, '현실에 매몰되어 이상을 버려서도 안되지만,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여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참된 이상은 현실에 뿌리를 두는 것. 현실을 잘 관찰하고 그에 적응해 가면서 이상을 펼쳐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어부가 이 말을 해 준 것은 굴원이 강한 의지를 밝혔을 때라는 점과, 어부가 이 말을 하면서 그저 빙그레 웃고 떠나버린 것을 생각한다면, 이 중 첫 번째 해석은 잘못된 것 같고, 두 번째는 굴원의 처지로 볼 때 좀 비약인 것 같고, 셋째가 그래도 좀 가까운 것 같죠?
덕보 2005/08/23 13:55 답글
이와 관련해서 이 글은 굴원 스스로 쓴 것이니 만큼 굴원 자신의 뜻이 무엇이었느냐도 중요할 것입니다. 굴원이 글의 마지막을 어부의 말로 맺은 것을 보면 뭔가 스스로의 자세를 반성한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러나 결국 굴원은 자신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한 초왕으로 말미암아 조국 초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말대로 멱라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을 무덤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부사에서 굴원은 자신도 어부의 말이 맞다는 것은 알고, 그래서 깊은 회한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리 살리라'하는 다짐을 또다시 보여 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정말 묘한 것은 이런 모든 해석을 뛰어넘는 또다른 해석이 있고, 그 해석이야말로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바로 맹자의 해석입니다.
덕보 2005/08/23 18:40 답글
맹자집주 이루장구 상(離婁章句 上) 제8장에 보면, "孔子曰 小子아 聽之하라 淸斯濯纓이요 濁斯濯足矣로소니 自取之也라하시니라"(공자왈 소자아 청지하라 청사탁영이요 탁사탁족의로소니 자취지야라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뜻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보아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라고 하셨다."입니다.
공자의 이 말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물의 맑고 흐림은 그것을 스스로 취함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인은 소리가 귀에 들어가면 마음으로 통달하여 지극한 이치 아님이 없음을 이러한 류에서 볼 수 있다."입니다.
이 말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 바로 다음 말을 보면,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훼손시킨 뒤에 남이 그 집안을 패가시키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토벌한 뒤에 남이 토벌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고, 이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이것을 "이른바 스스로 취한다(自取)고 하는 것"입니다. 참 묘한데, 위에서 본 해석과는 입장이 많이 다른 것 같지요?
덕보 2005/08/23 18:40 답글
맹자에 나온 이 말은 우선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탁영이나 탁족이나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라는 말인데...그렇다면, 강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에게 갓끈 같은 깨끗한 것들만 들어오느냐, 발같이 더러운 것들만 들어오느냐는 스스로가 맑으냐 흐리냐에 달렸다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흐리게 하면 저절로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맑게 하면 저절로 깨끗한 것들이 들어온다.그러니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다만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맹자에서는 굴원이나 어부의 생각을 추측해 풀이한 것이 아니라, 어부가 한 말을 가지고 새로운 뜻을 밝힌 것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또 다른 해석으로, '물이 맑거나 탁한 것, 세상이 맑거나 탁한 것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물이나 그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맑은 물이나 세상에서도 스스로 잘못하면 몸을 더럽힐 수도 있고, 흐린 물이나 세상에서도 스스로 잘하면 몸을 깨끗이 할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고, 이런 해석은 어부나 굴원의 뜻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어부가 굴원에게 '세상이 더러우면 너 자신을 더 더럽혀버리고, 세상이 취해 있으면 너가 더 취해버려라'고 놀린 후에, 굴원이 목숨까지 걸며 그것을 거부하자, 비로소 웃으면서 '좋은 태도다. 다만 흐린 물이나 세상을 거부까지 할 필요는 없다. 너만 잘하면 물이나 세상이 흐리거나 맑거나 너의 뜻을 잘 실현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한 셈이 되어서, 굴원의 뜻이 어부의 뜻이고 그것이 맹자의 스스로 취한다(自取)는 뜻에도 맞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리 해석할 경우에는 공자가 말한 '自取之也'를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라고 해석한 주자의 주장에 배치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휴..생각보다 간단치가 않지요? 여하튼 굴원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이소경>을 수박 겉 핥기라도 이해하게 되면 베껴 볼 생각입니다만..
덕보 2005/08/23 18:52 답글
 옛날 이야기 아니라니깐요? 인류 역사는 최소한 몇 백만 년이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삼십만 년은 되는 것이니, 몇 천 년 정도는 동시대라고 보아야 한다니깐요?(ㅎㅎ 이게 원래 제 생각이긴 한데 최근에 최인호도 '유림'을 쓰면서 이 말을 했다지요)

어떻든 새빠지게 쓰고 보니, 역시 好讀書하되 不求甚解라(책 읽으며 너무 자구를 따지지 마라... 글만 보지 말고 마음과 뜻을 읽어라...), 毋寬以略하고 毋密以窮하며(너무 느슨해도 문제지만 너무 치밀하면 오히려 궁해진다) 등등이 또 떠올라 쪽팔리군요.
faireecho 2005/08/23 21:53 답글
'물의 맑고 흐림은 그것을 스스로 취함이 있음', '自取'한다는 말을 저는 처음 보는데, 좀 놀라서 약간 멍하네요. 깊고 정확한 통찰인 것 같습니다.
덕보 2005/08/24 12:10 답글

'인류 역사는 최소한 몇 백 년'이 아니라 '..몇 백만 년'입니다./설 : 생각보다 재밌죠? 이게 오늘날의 일인 것이 굴원의 고향이자 초나라가 있던 후베이성(湖北성) 양쯔강(長江) 지역에서는 굴원이 물에 빠진 5월 5일(단오지요?)이 되면 충신 굴원을 기려서 강에서 용모양 배 경기를 하고 떡을 강에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군요. / f : 그 부분 원문이 '水之淸濁이 有以自取之也라'인데 주자가 이렇게 주석을 한 이상 '물의 맑고 흐림은 물이 그것을 스스로 취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지요./달 : 찌찌뽕 ㅋㅋ /함 :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바랍니다.

시지프스 2005/08/25 14:26 답글
덕보님 설명 덕택에 궁금하던 것이 많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어부의 마지막 말은 어떻게 보면 기회주의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한 이상인지도 의심스럽구요. 이 이야기에서 물이 취한다는 시각은 정말 예리하게 들리는 반면에 곁가지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일 뇌리에 남는 굴원의 죽음(유일한 실체라고도 할수있는...)은 오히려 이 모든 이야기의 맥을 뚫으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하나의 가치(회한에찬 다짐이라기보다는...)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匠은 졸열한 목수를 위하여... 引而不發  (0) 2011.04.02
임시보관(仁아런?)  (0) 2011.02.02
중국문화, 시의 의미(퍼온 글)  (0) 2010.12.14
열녀전(모의편)  (0) 2010.11.22
김부식과 정지상 詩話   (0) 201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