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아직은 이바구 잡설

경전선 2011. 11. 19. 11:40

(2011. 10. 13 ~ 11. 18까지 중국 북경시 조양구 서화협회와 서울 송파구 서화협회 교류전 참가하시는 형님들을 따라서 중국 북경과 제남, 곡부 등을 여행을 한 뒤에 송파서화협회에 여행기를 올리면서 같이 내 이야기를 좀 써 보았던 글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이곳에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이곳 회원님들과 같이 중국 답사를 다녀 온 인연도 있는데, 좀 더 친하고 배우자는 뜻에서 졸필이지만 조금씩 글을 적어 볼까 합니다. 우선 (혹시 경망스럽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조심스런 나머지)그 때 나누지 못한 저의 이야기를 조금 적어 보겠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올리려다가 이곳에 올립니다.... 이곳이 적당한 지 모르겠군요....)

*********************************************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지난 여정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행 때 제 얼굴을 본 분 들도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저의 개인적인 소개부터 드려야 옳을 것 같습니다. 저는 부산에 사는 竹圃, 素石선생님 동생입니다(57년생, 當55세). (이하 편의상 형님으로 표기하겠습니다.)

 

우선 아직은 이야기부터 해 볼까 합니다. 간혹 ‘아직은’이 뭐냐, '언젠가는'은 언제냐, ‘이제는’으로 바꿔라며 놀림삼아 이야기하는 경우도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회원님들은 처음 뵈올 때, 형님께서는 저를 이곳 카페에 ‘아직은’ 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사람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래, ‘아직은’이 무엇일까요? 저에게 ‘아직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보니 철도가 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직원들의 안전관리, 지도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오래해서 그런지 점점 의욕이 떨어져 갑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직무가 있고, 처자식이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더 벌어야 하고, 직장에서도 아직은 내 몫을 톡톡히 다해야 하고, 아직은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아직은’은 내가 이제 철도에 싫증을 느낀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을때, 그것은 교단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제도적인 절차를 거쳐서 교직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을 상대로 우리문화를 서로 이야기 하고 선현들의 행적을 돌아보며 같이 공부하는 일은 한번 해 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는 동양고전, 민속문화, 역사, 국악, 한문학... 등 다양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일을 맡게되면 지금처럼 무뚝뚝, 무표정한 얼굴들, 간혹 붉은 리본을 달거나 머리띠를 동여매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 보다는 천직으로 알고 올인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현재 제가 워낙 淺學菲才라서 '아직은' 준비가 안되었다 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즉 앞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번 중국 여행에서도 가기 전에 보아 둔 자료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형님께 묻기를 자주했습니다.


닉네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소 다른 일화를 하나 할까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가끔씩 나가는 모임에 부산교육대학교의 무료한문강독회가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시간에 강의를 하는데 직장일 관계로 자주 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곳 고정 회원들과 그다지 친숙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 곳 분들이 사이버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고전의 메아리>.... 나중에야 가입을 하면서 저는 망설였습니다. 닉네임을 무엇으로 할까. 그래서 옛 사람들은 自號까지도 한다는데 나도 이곳이 고전강독 카페이니 조금 고풍스럽게 한자로 지어보자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형님으로부터 들은 삼국지 삼고초려 부분의 澹泊以明志 寧靜以致遠 구절이 생각이 나서 澹자와 寧자 한 글자씩을 따서 澹寧齋라고 짓고 틈틈이 글을 몇 편 써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 회원들끼리 도대체 담녕재가 누구냐, 2자호는 어떻고 3자호는 어떻다는 등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퇴직을 목전에 둔 교수 한 분이 공개적으로 언제 식사자리에 오라, 자기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부산을 뜨기 전에 한번 보자는 식으로 글을 올리는 바람에 더 이상 이를 거절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거기 모임이 대부분 년만하신 어른들인데 담녕재를 계속 쓰는 것은 나이어린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즉각 아직은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담녕재는 한말의 문장가 영재 이건창이 썼던 호였었습니다. 그 분은 號를 明美堂, 寧齋, 澹寧齋...등을 썼더군요. 아무튼 저도 나중에 정말 맘에 드는 집을 하나 구하면 堂號로 한번 써 볼까 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작호를 하는데는 절대적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緣故地를 號로 정하는 所處以號, 인생 목표와 의지를 號로 삼는 所志以號,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가지고 號를 짓는 所遇以號,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특히 아끼고 좋아하는 것으로 號를 짓는 所玩以號 등의 몇 가지 대략적인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신용호 교수).


한편 저는 40대 시절에 自號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굳이 위와 같은 원칙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감과 의미를 좇아서 삭막한 기계문명 보다는 인정미 넘치는 鄕村을 생각하며 내가 사는 곳이 남녁이니까 南村, 또한 늦잠을 좋아하고 실행을 못하였지만 그래도 새벽 샘물을 깃는 의미, 맑고 깨끗한, 차디찬 새벽 샘물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경건하고 바르게 살자는 맘으로 曉泉이라고도 해 보았었습니다. 또한 몇 년 전, 선친 제사 때 죽포 형님께서는 (기억하시는 지 몰라도) 저에게 樂泉이라는 호를 주신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제가 호를 공표하지도 않았고, 호를 사용할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위와 같은 호를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중국 여행 명단에 형님은 저를 또 ‘三乎’라고 해 놓으셨더군요. 이 기회에 형님께 號記를 부탁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正名意識, 거기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 그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쓰다보니 주제넘게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군요. 그럼 이만....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화가친  (0) 2012.08.09
다시 우울증이....  (0) 2011.12.07
요즘 같으면....  (0) 2011.11.13
[스크랩] 내 마음의 강물/ 이수인 작사,작곡  (0) 2011.09.16
금수담아아담수  (0) 201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