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내 아들 친구가 쓴 글이라는데...

경전선 2013. 12. 18. 11:35

사진은 2010년 봄 김예슬 학우가 학교를 떠나며 정대후문에 써붙였던 대자보입니다. 그리고 2013년 바로 그 장소에 주현우 학우가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써붙였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폭발적 반응을 얻었죠. 2010년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라는 선언과 2013년의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인사(?)는 무게감을 겨누어본다면 전자 쪽이 훨씬 무거워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파장 면에서는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듯이 보입...니다. 물론 2010년 그때도 반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대자보는 소수의 행동가들에게 영감이 되었고 감동을 주는 데 그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머지 학우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참하지 못하지만 지지한다는 의견에서 김예슬 학우의 행동이 극단적이다,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이에서도 꽤나 논쟁거리였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로 돌아와 볼까요? 주현우 학우의 이 인삿말, 그리고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가 던진 파장은 대단했습니다. 저도 2007년도부터 학교를 다녔지만, 그동안 정경대 건물과 통로 담벼락이 자보로 빼곡하게 쌓일 정도로 호응이 높았던 대자보는 본 일이 없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언론에 보도가 되고 타 대학으로 퍼져나가고 사회 각층의 사람들이 안녕들하시냐는 물음에 '응답'하는 모습을 보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응답하게 만든 것일까요. '대학을 그만둔다'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무게감있는 선언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인사 혹은 물음에 비기지 못한 것일까요.

대학을 그만두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소속되고 싶고, 애착을 가진 부모, 형제,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은 자체로 소속감을 가지게 해 주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할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증명서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대학을 뛰쳐나온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배제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웁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한 무게감을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은, 그런 본능적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했기도 하거니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졌기 때문에 '괴짜'의 행동으로 생각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안녕하냐'는 물음에는 우리 모두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현우 학우는 우리에게 준엄한 도덕적 우월성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도 않았고 누가 더 강한지 두고보자면서 싸움을 걸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물었습니다. 혹시 일부러 눈돌리고 계신 건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우리는 '배제의 두려움' 때문에 불안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했죠.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에 겁먹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으로 확인한 것은 사실 사회의 모순이나 현 정부의 문제 같은 구체적이고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을 '대자보'라는 양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깨달았을 뿐이죠.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여태 우리 혼자만 불안한 줄 알았습니다. 나를 압박하는 학업, 취업, 인생계획에 줄줄이 붙던 물음표는 나 혼자 동여매고 가는 문제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대자보의 행렬은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결국 '나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였고 사회의 문제였던 것이죠.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불안감을 표현하는 자체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더 널리 메아리치게 만든다는 것을요.

그런데 잠시, 쉬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표현한 것은 '불안'이지 비전이나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도 제각기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다릅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동가였던 것 또한 아닙니다. 며칠 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앞에선 모든 안녕하지 못한 학우들에게 서울역으로 향하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행동하지 못해도 마음으로 응원한다며 미안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동참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대자보로 표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으로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기말고사를 앞두고 행동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심리적으로 더 큰 반항이고 불안입니다. 마음의 짐 때문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의식이라는 짐을 더 얹어주는 꼴입니다.

우리는 우리 목소리에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힘이 성급하게 어떤 것을 향해 맹렬히 달려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표현을 하는 것이 첫 단계였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목소리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철도민영화 문제든, 국사교과서 문제든, 현실정치의 어떤 문제든 간에 소수의 행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따라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망이라는 건 한순간에 타올랐다 꺼져버리는 불꽃이 아닙니다. 목소리를 내는 나와 너는 학생사회의 공론장을 강화시키고 숙의의 과정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묻고 싶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결을 이용해 조급히 해결하고 싶어하는 행동가분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우리 모두의 동참을 바라는 건 아니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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