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나와 한문고전공부

경전선 2014. 1. 8. 17:46

이른 바 공부하는 사람이 사람이 이따금 책을 펼쳐서는 안되겠지만, 직장관계로 부득이 <이따금> 찿는 곳이 있다. 부산의 영광도서 문화사랑방... 그러니까 이곳은 부산광역시의 지원을 받는 단체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지난 1999년 부터 여기저기 한문고전 공부하는 곳을 찾아 다녔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곳은 초읍동 부산시민도서관, 부산교대 석음서당, 경화서원, 퇴계학연구원, 영광도서, 부전동사무소 등이다. 명심보감, 소학, 해동소학, 논어, 맹자 등을 읽었다. 대학은 인터넷 강의가 좋았고 중용은 아들과 함께 방송강의를 보기도 했다. 인터넷 강의 중에는 전통문화연구회 신용호 교수의 고문진보, 송재소 교수의 당시감상, 전호근, 권경상, 김병애 교수의 강의 등이 인상적이었다.

영광도서에서는 조양숙, 이진용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한동안 영광도서를 찾지 않았더니 그 사이에 이진용 선생님은 작고하셨다고 한다. 또한 <영광평생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시의 지원을 받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지난해 가을 영광평생교육원보를 발간을 위한 원고 수집이 있었다. 대부분이 연만하신 어르신들인데, 사실 나는 별로 이렇다할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를 제출을 사양했었다. 그러나 투고자가 많지 않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이 내 주어야 한다고 간청을 하기에 졸작을 낸 적이 있다.

지면 제약이 있어서 A4 1쪽 정도 밖에 허용되지 않아서 줄이느라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원보(제4호)를 받았다. 생각보다 크게 실려서 조금 겸연쩍하다. 여기에 그 원고를 올려둔다.

 

나와 한문고전 공부

(三乎 趙奉翼)

 

영광평생교육원!, 오늘은 선현들의 어떤 말씀을 듣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서면으로 향한다. 다행히 직장과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라서 시간이 맞으면 종종 즐겨 찾는 곳이다. 강의실에는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아직은 젊은 나는 그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늘 뒤편 한 쪽에서 책을 펼친다.

기차와 한문, 얼핏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이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과학문명 속에서 한문은 고루하고 어렵다고 단정하기 쉽다. 내 직업 분야도 아닌데 나는 왜 한문 고전에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일까? 고전에는 선현들의 행적이 담겨있고, 오랜 세월을 읽히면서 오늘의 삶에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이 어느 것 하나 고전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있으랴.

내가 한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가풍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선친(後石 趙南洪)은 한학을 많이 하시고 유림활동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이시고, 형님들 또한 서예를 즐겨 하신다. 올 봄에 아버지 효행비를 세우면서 한시를 잘 지으시는 仲兄(竹圃 趙得升)은 아버지 유시를 해석하여 ‘후석유적(後石遺蹟)’ 이라는 책을 펴냈고, 셋째 형은 비문 제자를 썼다. 나는 형님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참 재미있고 소중한 시간이다.

내 책장에는 오래된 책이 한 권 있다. 1976년 고등학교 졸업 직후 구입한 ‘모범한문입문(曺斗鉉 著)’이다. 당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샀을까? 아버지께서 그 책을 보시며 나를 격려하신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책 ‘한시의 이해’에는 <1992. 04 고조부님 입비를 하고서>라고 메모가 되어 있다. 당시에도 고향에 갔다가 한시에 관한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런 기억도 있다. 나에게는 경외감이 드는 외숙 한 분이 계신다. 1999년 정월, 세배를 드렸더니 나이를 물으면서 ‘직장 일 외에 또 다른 개발을 하라’고 덕담을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즐겨할 수 있는 것은 한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명심보감 해설서를 샀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는 한문과 조금씩 가까이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그 해부터 영광도서 등 고전강의를 하는 몇 곳을 찾아다니며 명심보감, 해동소학, 소학, 논어, 맹자 등을 공부를 했다. 그런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무척 부러웠고, 내용 뿐 만 아니라 교수법까지도 나에게는 관심사항이었다. 그리고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곳은 인터넷이다. 간혹 인터넷 정보는 오류가 있어서 신중해야 하지만, 시공의 지장을 덜 받는 편리함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 후 나의 의지가 허약한 탓으로 책을 놓아 버렸다. 특히 직장일은 천만근 심적 압박을 가해왔다. 간혹 나의 歸去來辭는 언제쯤일까 하는 심정으로 일종의 도피처로서 한문을 찾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심란할 때면 나를 괴롭히는 의문이 하나있다. 그것은 내 주제에 한문공부는 與世推移하지 못하고 한갓 백면서생이 하는 짓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아무튼 이제 올 6월 나는 다시 영광도서를 찾았다. 신들메를 다시 조여 매기로 한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 날 배운 것을 되새겨 보고 미흡한 부분은 더 찾아본다. 열심히 내공을 쌓아 이제는 직장이 아닌 고전 강단에 서고 싶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에 부단히 노력하여야 하리라.

요즘 저녁이면 성지곡공원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아내가 사준 MP3겸용 라디오가 또 하나의 친구이다. 오늘도 고문진보 한 토막 강의를 들으며 또 걸어 보아야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