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도서 사랑방에서 진행되는 한문고전 강의에 시간이 맞으면 틈틈히 다녔다. 그런데 올해 교육원 院報를 발간하는데 있어서 수강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서 원고모집이 여의치 않는 모양이다. 이에 청탁을 받고 아래와 같이 졸고를 써 보았다. 원래 둔재인데다가 A4 1쪽의 지면제약도 있어서 더욱 어려웠다. 제목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시민공원 산보 유감이라고 할까 보다.
제출하기 망설여 지지만 추후 더 퇴고를 하기로 하고 우선 보관의 의미로 여기 등재해 두자.
부산시민공원을 산보하면서
(三乎 조봉익)
올 봄에 부산시민공원이 문을 열었다. 도심 한복판에 약16만평의 대형 녹지공간이 생겼다는 점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구나 집이 지근거리에 위치한 나는 매우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서 아내와 함께 공원산책에 나선다. 사실 퇴근하면 TV리모콘에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인데,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체중을 염려하는 아내는 한사코 나를 부추겨 공원으로 가자고 한다.
공원을 걷다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 애완견을 대동한 사람, 이어폰을 꽂고서 열심히 걷는 사람, 벤치에 앉은 청춘 남녀... 그렇다면 공원에서의 우리 부부는 어떤 모습일까? 남들처럼 활달한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냥 천천히 걷는다. 화제는 그저 평범한 그 날의 일상, 아이들 이야기, 퇴직 후 예상되는 생활 등이다. 나이가 들면 과거 회상이 많아진다는데 나는 이미 잊어버렸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아내는 가끔씩 늘여 놓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공원산보를 하면서 나지막하게 한문문장을 읊조리는 것이다. 물론 아내 외에는 내가 무엇을 중얼거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는 서예와 한시를 즐겨하는 형님이 얼마전에 귀거래사와 오류선생전 행,초서 서첩을 발간하면서 아버지께서 애송하던 고문진보 몇 문장을 낭송, 녹음하여 첨부하였는데, 나도 이를 따라 외워 보는 것이다. 물론 서툴고 더듬거린다. 그러나 좀 막히면 어떠랴. 이는 바쁜 도시생활 중에 인자하신 아버지 모습과 낭랑한 음성을 그려보고 유훈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간혹 유안진 시인이 쓴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이 생각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以文會友 以友輔仁, 저녁 공원길을 이런 문우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내는 한문지식은 없지만 나의 그런 행동에 거부감이 없어 다행이다. 오히려 내가 미천한 실력으로 설명을 해주면 잘 들어 주어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퇴직이 1년여 남았다. 나는 그동안 ‘아직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공개하면 ‘숨긴 이름’으로서의 의미도 상실되지만, 나름대로 두 가지 의미를 두었다. 첫째는 직무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가정을 위해서 아직은 내가 더 벌어야 하고, 직장에서도 아직은 내 몫을 톡톡히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퇴직 후 해보고 싶은 한문고전 강의에 대하여 ‘아직은’ 내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점이다. 學然後知不足이라 했는데 영광평생교육원은 나에게 많은 깨우침이 되었다. 지금은 부족한 점이 많기에 더 실력을 쌓고 교수법 하나까지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도움을 주며 성장한다는 것인데, 몰랐던 것을 하나씩 깨우쳐 가는 그 희열감이 무척 클 것 같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이제는’ 한걸음 더 도전하라고 한다.
엊그제는 유난히 달이 밝았다. 그 날은 이백의 夜泊牛渚懷古(야박우저회고) 시가 생각났다. (중략)登舟望秋月(배에 올라 가을 달을 보니) 空憶謝將軍(부질없이 사장군이 생각난다) 余亦能高詠(나도 잘 읊을 수 있지만) 斯人不可聞(이제 들어 줄 사람이 없도다)... 혹자는 이어폰에 들리는 노래보다 못하다 하겠지만, 이런 시 구절을 음미하며 공원을 산보하는 것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끝)
'담녕재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도 송파서예 사진? (0) | 2014.11.09 |
---|---|
죽포 형님 서첩 홍보 글(서예문인화) (0) | 2014.10.20 |
월간 서예와 문인화에 소개되었던 죽포 조득승 관련 기사 (0) | 2014.05.25 |
봄날 아침에... (0) | 2014.04.23 |
임시보관 (0) | 2013.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