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이야기

노류장화

경전선 2010. 6. 9. 19:34

 

요즘엔 19시가 되어도 아직 창밖은 대낮이다. 몇몇이 남았다. 이제 사무실이 한층 조용하다.

퇴근전에 한마디 적고 가자.

 

학교다닐 때 노래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목사가 되었고 찬송가를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시절에 친구가 어디서 들었는 지, 재미삼아 어른들이 부르는 뒷골목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가사가 제법 재미있었다. <영자씨의 입술은 대폿집에 술잔인가, 이놈도 어쩌고 저놈도 저쩌고...>, 그러면 우리들은 "띵까따!!, 띵까따!!"하면서 장단을 맞추곤 했었다.

 

노류장화라는 말이 있다. 路柳墻花...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 즉 아무나 길을 가면서 손 쉽게 꺽을 수 있는 꽃을 말한다. 또 동네북이라는 말도 생각난다. 그냥 아무나 한번 쳐보고 지나가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이런 단어들을 들먹이는 이유는...

내가 생각해 봐도 내 자신이 처량하다. 동네북인 셈이다.

한동안 노조 문제 때문에 괴롭더니, 이제는 경영평가 지표에 시달여야 한다. 테러 예방이 어떻고, 보안이 어떻고, 물절약, 에너지 절약, 청렴도, 가치향상도, 지식제안, 거기다가 수입증대, 비용절감...등.... 끝이 없다.  과거에는 별로 그저그런 것으로 여기던 것들인데.... 

그것만이 아니다. 안전, 산업안전,... 안전불감증이라는 오명을 받을까봐서 차마 뭐라고 못햇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 이러다가 사고라도 한껀 나면 또 분임반 관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잘했니 못했니 하면서 틀림없이 말이 나올 것이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불합리한 것은 건의해서 고치면 되지....)

그리고 더욱 답답한 것은 뭘 하려고 해도 이젠 머리가 멍청해져서 내가 봐도 잘 되지 않는다. 센스도 없고....

웃사람에게 미안하고.... 이 마음 몰라주는 머시기들에게는 야속하고.... 그렇다고 뾰족한 묘수도 없고.....

 

뭘 하려해도 잘 안되고, 듣고나면 금방 잊어 먹고... 옛날 같으면 더 깊이 들어 팔텐데, 중도에 그만두고 싶어한다.

업무 사안은 복잡해져 가는데, 머리는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탱자탱자 하고 휙~휙~퇴근하는데

나는 혼자 안고서 끙끙데고 있다. 그들은 이시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요즘 같으면 정말 답이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신이 나지 않는 이유,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품바가 재주가 없어서 박수를 못받는가? 박수가 나오지 않아서 신명이 나지 않아서 공연을 못하는가?

닭과 계란의 다툼 같지만....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 선비(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를 화장하는 법이다. 또 伯牙絶絃(백아절현)의 고사도 생각해 보자.

5월 소집교육시 그만큼 사정해서 부탁을 드렸는데, 소 닭보듯이 하는 사람들에게 뭐랍시고 또... 이러십시요, 저러십시요 하면서 또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나라는 놈은 그렇게 가치도 없는가?... 동네북이 되었다가 어느 때는 마음을 억눌러가며 수도하는 수련자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어리석게 이런 곳에 뭘 써봐야 무슨 해답이 있느냐고 핀잔할 것이다... 하긴, 세상엔 그런 생각도 있겠지)

 

아무튼 참 어려운 세상이다. 어려운 세상이여....

이런 낙서 하기는 처음이다.... 이만 나가 볼련다.

2010. 6. 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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