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적

揚州 여행관련 한시(두목)

경전선 2026. 4. 14. 13:57

贈別 二首之一 杜牧

娉娉嫋嫋十三餘(빙빙요요십삼녀)  豆蔲梢頭二月初(두구초두이월초)

春風十里揚州路(춘풍십리양주로)  卷上珠簾總不如(권상주렴총불여)

 

예쁘고 한들한들 열 세살 남짓, 2월초 가지 끝의 두구화 같구나.

봄바람 부는 양주의 십리길에, 주렴을 걷고 보아도 모두 그대만 못하구나.

 

贈別 二首之二 杜牧

多情却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唯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불성)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시환석별)  替人垂淚到天明(채인수루도천명)

 

다정함이 도리어 무정한 것 같아서, 알겠네, 술잔 앞에 웃음 짓지 못함을

촛불도 마음 있어 도리어 이별을 슬퍼하며,  나 대신 날 밝을 때까지 눈물 흘리네.

 

泊秦淮杜牧

煙籠寒水月籠沙(연롱한수월롱사)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商女不知亡國恨(상여부지망국한)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안개는 차가운 강물을 감싸고 달빛은 모래를 덮는데, 밤에 진회에 정박하니 주막에 가깝구나

상녀는 망국의 한도 모르고,  강 너머에서 오히려 〈後庭花(후정화)〉를 부른다.

 

江南春 杜牧

千里鶯啼綠映紅(천리앵제녹영홍)  水村山郭酒旗風(수촌산곽주기풍)

南朝四百八十寺(남조사백팔십사)  多少樓臺烟雨中(다소루대연우중)

 

여기저기서 꾀꼬리 울고 초록과 붉은색 어우러지며, 강마을과 산마을에도 주막 깃발이 나부끼네.

남조 때 세워진 수많은 사찰, 많은 누대가 안개비에 잠겨있네.

 

遣懷 杜牧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 贏得青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강호에서 실의한 채 술 지고 다니던 때, 낭창한 가는 허리 손바닥에서 춤출 만큼 가벼웠지​

꿈결 같은 양주생활 십 년 만에 깨어보니, 청루(靑樓)에서 겨우 얻은 건 박정한 사람이란 별명

- 833(31)부터 2년간, 양주에서 회남절도사 우승유(牛僧孺)의 막료로 근무

 

寄揚州韓綽判官(기양주한작판관)

靑山隱隱水迢迢(청산은은수초초)  秋盡江南草木凋(추진강남초목조)

二十四橋明月夜(이십사교명월야)  玉人何處敎吹簫(옥인하처교취소)

청산은 흐릿하고 물은 멀리 흘러가는데, 가을이 다 가도 강남의 풀은 마르지 않는다 

이십사교 달 밝은 밤, 어디서 옥인(玉人)에게 퉁소를 불게 하고 있을까.

* 隱隱  흐릿한 상태, 迢 멀 초, 敎 = 使

양주(揚州)는 현재의 강소성(江蘇省) 양주시(揚州市)로서 당대(唐代)에는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의 소재지였다. 역대 중국 도회지 중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여 풍류가 화려했던 곳이다. 두목은 대화(大和) 7(833)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우승유(牛僧孺)의 막료로 장서기(掌書記)에 임명되어 대화 9(835) 감찰어사(監察御使)에 제수되기까지 2년간 이곳에서 풍류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작품은 기증시(寄贈詩)로 두목이 감찰어사(監察御使)에 제수되어 양주의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막부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뒤에 동료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한작(韓綽)이란 인물에게 보낸 시이다. 당대(唐代)의 양주는 양자강 하류에서 가장 번성한 도회지였고, 소탈하고 분방한 두목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

 

'문화, 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경여행 관련 한시1(항우 관련)  (0) 2026.04.14
한가위 낙서  (0) 2025.10.06
어찌 이역에서 짐승들과 섞이랴  (0) 2024.09.26
성복(成服) 관련  (0) 2022.07.31
추사선생을 생각하며  (0) 2014.12.03